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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피신하는 가난한 이들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시편집의 정수를 맛보게 해 주는 책!


'성경 펼쳐 읽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시편』은, 수천 년 전 험난한 삶의 한가운데서 행복을 발견했던 이들이 하느님께 바쳤던 찬양과 그분의 다스림에 두었던 희망으로 초대한다. 또한 탄원에서 찬양으로 나아가는 끊임없는 여정으로 독자를 이끌면서, 시편이 '주님께 피신하는 가난한 이들의 기도'임을 강조하고 그 안에 우리 삶이 표현되어 있음을 보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이 책은 시편에 대한 입문으로 안내한 다음, 시편집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아홉 개의 시편을 펼쳐 보이는데, 아직 국내의 다른 책에서는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관점을 곳곳에서 제시한다. 곧 시편집을 서로 무관한 개별 시편들의 모음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와 신학을 지닌 한 권의 책으로 맛보이면서, 시편 전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가난한 이들의 찬양 위에 좌정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묵상에 이르게 한다.

 

"주님께 피신하는 가난한 이들의 찬양이 하느님을 임금으로 고백할 때, 바로 그 찬양들이 하느님의 옥좌가 되어 그 위에 하느님께서 임금으로 좌정하신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그 자리에서 선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한 권의 책'인 시편의 영성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고통과 상처 안에서 세상에 희망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찬양가들의 책'인 시편에는 왜 그렇게 많은 탄원시편이 들어 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시편집이 주님께 피신하는 가난한 이들의 기도이기 때문이다. …… 주님께 '피신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삶이 그렇게 평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 탄원기도를 시작했던 우리가 한번 찬미에 이른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리 기도의 여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입에서 탄원이 흘러나오게 했던 그 삶의 현장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편집은 직선형이 아닌 나선형의 기도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것이다(탄원→찬양→탄원→찬양……). - 12쪽, '시편 입문'에서

 

시편의 유형들과 연관해서 지금까지 설명해 온 시편집의 형성 과정을 요약하자면, 시편집에서 큰 덩어리들을 이루고 있는 찬양시편과 탄원시편은 시편집의 기원, 곧 개별 시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반면 군왕시편과 지혜시편은 개별적으로 덧붙여진 것으로서, 시편집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편집자의 의도를 드러내 보여 준다. 군왕시편은 하느님의 통치 시편과 함께 시편집의 주제가 하느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 주며, 지혜시편은 시편집이 '성가 책'이라기보다는 '묵상서'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 34쪽, '시편 입문'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시편 2에 한편으로는 왕정 시대의 기억이 깃들어 있고 고대 근동의 다른 나라들에 있었던 군왕에 대한 이해가 연관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옛 표상들이 왕정이 무너진 이후에 발달하게 된 메시아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해석은 시편집 전체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상 시편 2는(그리고 시편집의 주요 위치들을 차지하고 있는 군왕시편의 주제는) 고대로부터 있어 온 표현들을 통하여 아직 오지 않은 메시아, 아직 온전히 실현되지 않은 '주님과 메시아의 나라'를 노래하는 것이며, 그 나라는 바로 시편집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 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편집에 들어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주제는, 마치 복음서의 여러 주제가 그러하듯이, 바로 그 '나라'라는 주제로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 87쪽, '시편 2'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그분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역사를 이끄신다는 것은 "제후들"이 세력을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의 눈에 명백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 찬양시편은 현재의 세상 모습을 보이는 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신앙 고백이다. ……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들이 그들의 찬양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때 이러한 태도는 "제후들"의 태도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며, 찬양시편에서 노래하는 것은 하느님의 종말론적인 나라이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믿음으로써 이미 지금 그 나라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찬양은, 세상을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는 "제후들"에게는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으리라. - 111~112쪽, '시편 146'에서

 

실상 저주시편은, 시편 저자가 삶의 실제 상황들에 대해 보여 준 반응들이었다. 필자는 시편을 공부하면서 저주시편에 대해 몇 번 질문도 받았고 설명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어떤 합리적인 설명보다도 불의하게 고통당하는 이들에 대한 연대성을 가질 때에야 이 시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편 기도, 특히 교회의 기도인 시간 전례가 온 세상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라면, 저주시편을 통해 어쩌면 우리는 이 기도에 포함되어 있는 이 가운데 가장 억눌리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오직 하느님의 정의에 매달리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 목소리를 하느님께 올려 드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들에게 용서를 설교하기 이전에, 들리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더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태도가 아닐까?

- 169~170쪽, '시편 137'에서

 

시편 120-134에는 모두 '순례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 이렇게 볼 때 시온과 일상의 삶을 이어 주는 것으로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주제가 '축복'이다. 축복은 시온으로부터 오는 것인 동시에 일상생활의 다양한 순간에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여러 상황 속에서 이 시편들을 읽으며 기도할 때에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은 시온으로부터 오는 축복이라는 차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실제로 예루살렘에 가거나 전례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이 시편들을 노래하는 기도자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성전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것과 같은 그 축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 206~210쪽, '시편 121'에서

 

시편 34,2에서는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늘" 주님을 찬미하겠다는 결의이다. …… 시편 저자가 자신의 찬양에 시간적인 제한을 두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그가 항구하고 지속적인 찬양의 자세로 삶의 모든 순간을 살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성전에서의 찬양이 삶 전체로 확산하고 그의 삶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늘"이라는 표현에서 또…… 시편 저자는 어려움 속에서도 중단되지 않는 끊임없는 기도, 삶의 모든 순간에 드리는 찬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254~256쪽 '시편 34'에서

 

두 가지를 되새기고 싶다. 그것은 시편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알려 주는 안내서이며 동시에 주님께 피신하는 가난한 이들의 기도라는 점이다. 그 가난한 이들을 행복으로 이끌기 위하여 시편집은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맛 들일" 수 있다면, 이 가난함 속에서도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282쪽, '시편 34'에서



여는 글 …… 6

 

시편 입문

 

1. 시편집 - ‘찬양가들의 책’ …… 11

2. 시편 번호 …… 14

3. 시편 저자·머리글 …… 17

4. 개별 시편의 기원과 시편집의 형성 …… 23

5. 시편집의 짜임 …… 29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 좌정하신 분

 

시편 1 …… 38

시편 2 …… 61

시편 146 …… 91

시편 22 …… 115

시편 137 …… 148

시편 73 …… 172

시편 121 …… 205

시편 122 …… 229

시편 34 …… 246

 

주 note …… 284

참고 문헌 …… 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