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통권 노트』에 이어 『신약 성경 통권 노트』 출간!
성경 전체를 개관할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하는 신자들의 간절한 바람에 따라 『구약 성경 통권 노트』에 이어 『신약 성경 통권 노트』가 출간되었다.
성경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성경의 내용이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성경에 관한 전반적 내용을 배우고 익히는 동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그 의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성경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신앙이 커가면서 삶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신약 성경 스물일곱 권을 간략하게나마 낱낱이 죽 살펴보는 데 의미를두었고 신약 성경을 읽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보들과 주요 사상 등을 요약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의 구성은 제1부 개관, 제2부 복음서와 사도행전, 제3부 바오로 서간, 제4부 히브리서와 가톨릭 서간, 제5부 요한 묵시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단원의 서두에는 해당 성경과 관련한 전반적인 정보를 알려주고, 성경 각 권에 대한 정보가 이어진다.
각 권에 대한 설명은 저자나 집필 시기, 집필 장소 등에 대한 ‘기본 정보’, 성경의 대략적인 내용과 구조를 알 수 있는 ‘간추린 구조와 내용’, 각 권의 성서적, 신학적 토대와 관련한 ‘신학적 주제’로 이루어져 있어 마태오 복음서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각 권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신약 성경 전체의 맥을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또 성경과 삶을 이어주는 저자의 ‘묵상 노트’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여운과 생각거리를 안겨 줄 것이다.
이 책은 성경공부를 처음 시작하려는 이들에겐 신약 성경에 대한 지식을 명쾌하게 전해주고, 이미 공부 중인 이들에게는 그동안 쌓아 두었던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책속에서]
그리스도교 정경이 확정되기까지
그리스도교의 정경을 확정하는 작업은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오늘날 신약 성경에 수록된 스물일곱 권의 책들을 모두 정경으로 인정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2세기경 로마에서 작성되었다고 알려진 ‘무라토리 정경’ 목록을 보면, 구약 성경과 함께 신약 성경으로는 스무 권(네 권의 복음서, 사도행전, 열세 권의 바오로 서간, 베드로 1서, 요한 1서) 그리고 외경 두 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신약 성경의 남은 일곱 권(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2서, 요한 2서와 3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은 간혹 인용되기는 했지만 모든 교회가 아닌 일부 교회에서만 받아들여졌다. 이 글들이 사도적 원천을 갖고 있으며 신앙의 교리를 포함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 스물일곱 권의 정경성은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오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며, 서방의 라틴 교회(382년, 로마 회의)와 동방의 그리스 정교회(397년과 419년, 카르타고 회의)의 의견 일치를 통해 인정되었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정경 확정 과정은 초대교회가 보편 교회, 세계 교회로 한 걸음 도약하게 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책들은 오늘날까지도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사는 수많은 이들을 나자렛 예수와 그리고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고 있다.
- 신약 성경 입문, p14
복음이란 무엇인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한낱 인간이 되셨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아무 죄도 없는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추문일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인간의 운명을 살다 가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부활의 빛을 통해서였다. 하느님께서 인간 곁에 내려오셨다는 것,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짊어지고 사시다가 고통 받고 돌아가셨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부활하셨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예수님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증거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승리의 표징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이 예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표현되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진 것이다(참조: 마르 13,10). 그것은 곧 하느님의 나라, 곧 하느님의 다스림에 관한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고 병자를 낫게 하시며 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시면서 비유와 가르침으로 그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궁극적으로 구원의 소식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한 분이신데 복음서가 네 권인 이유는 예수님의 전기를 빠짐없이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 다양한 증언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 공관 복음서, p44
신학적 주제
1) 그리스도론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의 신원을 나타낸다. 마르코 복음서에는 메시아에 대한 비밀이 작용한다면, 요한 복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신원을 점차 밝혀나간다. 요한 복음서는 그렇게 그분이 누구신지 밝히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는지 혹은 받아들였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요한 복음서의 고유한 예수님을 잘 나타내는 호칭으로는 ‘사람이 되신 말씀’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구원자’ 등이 있다.
① 사람이 되신 말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14)라는 표현과 같이 육화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로고스 찬가(1,1-18)는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과 구별되는 말씀이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묘사한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11,27; 참조: 20,31)으로서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시다(1,10; 10,36; 16,28).
세상에 오신 그분은 당신에게 맡겨진 특별한 임무를 말씀과 행동으로 완수하신다(참조: 5,36-47;10,25).
② 메시아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약속된 구세주라는 것을 선포하면서 그분 안에서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알린다. 구약 시대부터 예고된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는 신앙고백 형식으로 여러 번 언급된다(1,41.45; 4,25-26; 7,26-27.41-44; 9,22). 그뿐 아니라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1,49)라는 나타나엘의 고백은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이 기다려온 메시아이시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③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 복음서의 강조점은 하느님의 아드님 메시아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것이다(1,29; 1요한 2,2). 그분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된 생명의 빵이시며(6,32-33) 누구든지 그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는 점은 유다인들이 기다려온 메시아 개념을 능가한다. 조상들은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6,49.58) 예수님께서는 참 생명을 가져오신 분으로서 생명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이다.
- 요한 복음서, 신학적 주제, p79
바오로 서간
사실 바오로는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도 아니었고 열두 제자에 속해 있지도 않았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생생하게 기록한 복음서와는 달리 바오로 서간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바오로는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직접 사명을 부여받은 사도로서의 확신과 책임감으로(로마 1,1; 1코린 9,1-2; 15,10; 2코린 11,4-6) 신앙 공동체에서 제기되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 권고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디아스포라 교회의 사도이며 활동가인 바오로에게서 때로는 뜨거운 열정과 투사다운 격렬함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발견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바오로 서간이 집필된 50년대, 그리스도교는 제대로 조직화되지 못한 공동체였다. 유다교가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부르셨는지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듯이 그리스도교도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부르심을 새롭게 하셨다는 것을 곰곰이 되새겨야 했다. 바오로 서간이 신약 성경 안에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로 다음에 오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자리매김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서간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사도 바오로에 대하여, p102
히브리서
어원학적으로 히브리인은 기원전 2천 년대 문서에 언급된 ‘아피루’ 또는 ‘하비루’라는 무리와 관련이 있다. 이 무리는 부역에 끌려가거나 용병으로 일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이주민’ ‘외국인 노동자’ ‘유랑민’ 등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히브리인은 단지 역사 속에나 존재하는 과거의 인물들만이 아니라 오늘 한국 사회에서 2%를 차지하는 이주민일 수도 있고,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은 편안하게 안주하거나 특권을 누리는 삶이 아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광야의 여정을 걸었듯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삶의 광야를 가로지른다. 하느님은 보일 듯 말듯한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 감추어진 기쁨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은 상처받으면서도 뿌리 깊은 희망을 안고 걸어가는 나그네이다.
히브리서는 그러한 순례의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이라는 목표에 대한 전망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 준다.
- 히브리서, 묵상 노트,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