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희 대주교님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북녘 교회에 관한 구술사이다. 1924년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으로 격동의 역사를 사신 윤 대주교님의 기억은 진남포 본당에서 복사를 섰던 여덟 살 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대주교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속에는 북녘 성당과 덕원신학교 풍경 안에 일제와 공산 탄압 속에서도 양 떼를 돌보던 평양교구 사제와 선교사들, 그 안에서 신앙을 지켰던 신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38선을 넘어 남쪽 땅을 밟은 순간도, 6·25 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명동성당에서 인민군복을 입은 큰형님께 강복을 준 그날도 대주교님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모든 순간,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오셨다는 대주교님의 고백을 담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앙과 민족 화해라는 교회의 소명을 비춰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 7
간행사 · 12
1부 신앙의 요람, 평양 교구
1장 사제 성소로 이끌린 어린 시절
우리 집안 · 27 | 진남포성당 · 32 | 복사를 서다 · 37 | 진남포의 은인, 스위니 신부님 · 39 | 배 신부의 시약소 · 43 신사 참배 · 46 | 해성학교 - 교리공부를 하다 · 51 | 나의 반성 · 56 서포 예비 신학교 · 59 | 장정온 악니다 수녀님과 인사 · 64 | 소신학교 - 덕원과 서울 동성신학교로 나뉘다 · 66
2장 아름다운 기억, 신학교 시절 덕원신학교 신학생이 되다 · 71
신부 여섯만 나와도 내가 춤을 추겠다 · 75 | 소신학교 시절 · 77 | 공부는 열심히 · 82 | 최고의 교수진 · 86 안셀름 로머 교장 신부 · 87 | 루치오 로트 원장 신부 · 93 라틴어 선생님 · 95 | 아르눌포 슐라이허 부원장 신부 · 97 루페르토 클링자이스 신부 · 100 | 평신도 교사들 · 104 | 신학교 관현악단 · 106 | 그레고리오 신부님 · 111 | 깐또르가 되다 · 114 월반을 하지 않다 · 117 | 덕원신학교의 학풍 · 122 | 담배 허용 · 122 자율적인 학교 분위기 - 경계는 없어 · 124 | 신학교에서도 내선일체 · 127 | 금강산 소풍 · 129
3장 나의 가족, 해방을 맞은 우리
부모님 · 137 | 큰형 건희 모세 형님 · 140 | 작은형 곤희 형님과 동생 봉희 · 145 | 누이동생 요안나 · 147 해방을 맞다 · 151 | 해방 후의 평양 · 154 | 관후리성당 재건 · 156 | 우리 신학생은 우리 손으로 · 159
4장 시작되는 공산 탄압
차부제 서품 · 167 | 덕원신학교 - 시련을 맞다 · 168 | 잡혀가신 주교 아빠스 · 174 | 끌려가신 교장 신부님과 독일 수도자들 · 178 덕원신학교 강제 폐쇄 · 181 | 평양교구 - 홍용호 주교님을 잃다 · 185 길 잃은 양들은 어디로 · 189 | 진남포 이야기 - 우리는 유대철처럼 될 거야! · 193 신부님을 지키는 신자들 · 199 | 조문국 신부님 · 202 월남 계획을 세우다 · 206 | 드디어 서울에 · 221
2부 사제의 길
1장 새 사제 시절과 6·25
사제 서품 - 가장 기쁜 날! · 229 | 첫 소임 - 명동 보좌신부 · 235 | 6·25 발발 · 236 | 모리 멜리우스 에스트 · 239 | 피난민들에게 고해성사 · 241 | 형님을 만나다 · 242 | 전란 중 명동성당 미사 · 247 | 북한군 명동성당 점령 · 249 | 중부보안서에 잡혀가다 · 250 | 명동에서 쫓겨나다 · 253 | 다 맡기고 떠나는 길 · 255 | 구산공소 · 259 | 서울로 돌아오다 · 261 | 9·28 수복 후 평양으로 돌아가다 · 263 | 주교 아빠스의 무덤을 참배하다 · 266 | 우리는 평양교구 신부다 · 269 | 다시 찾은 진남포본당 · 272 | 영유본당을 뒤로 하고 · 275 |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 277 | 포로수용소 군종 신부로 · 278 | 이산가족 상봉 · 282
2장 평양교구 출신의 주교
부산 가톨릭 도서관 부관장 · 289 | 성신소신학교 교사로 일하다 · 291 | 감독 신부 시절 · 295 | 로마 유학 · 296 | 지학순 주교와의 우정 · 302 | 학위를 마치다 · 308 | 중앙협의회 총무 시절 · 309 | 김남수 주교와의 우정 · 310 바티칸 공의회 참석하다 · 314 | 주교 수품 · 316 | 바오로 6세 알현 · 318 | 수원교구장 시절 · 321 | 서울교구장 서리 · 324 | 하느님 안에서 살아온 나의 삶 · 328 | 통일은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 330
에필로그 · 334
글쓴이 윤공희
1924년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으로 함경남도 덕원신학교를 수료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서울 성신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 3월 사제 수품을 받았다. 1963년 초대 수원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주교 수품을 받았으며, 1973년 광주대교구장으로 임명, 대주교 승품을 받았다.
최근작 : <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
옮긴이 권은정
작가, 전문 인터뷰어, 번역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언론사의 런던통신원으로 오랫동안 일했고 국무총리실 홍보비서관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 『그 사람이 아름답다』, 『젠틀맨 만들기』, 『불꽃이 향기가 되어(공저)』, 『착한 기업 이야기』 등이 있으며, 가톨릭 관련 번역서로 『상처 입은 관계의 치유』, 『시몬느 베이유』, 『삶의 대화』, 『붉은 새의 선물』 등이 있다.
최근작 : <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Small Urban Manufacturers (소공인 영문판)>,<소공인> … 총 17종 (모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