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심리학자에게 말을 건네다
성경은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꼭 성경과 관련 있는 이만이 아니라 그가 누구라도 상관없다. 직업, 학식, 나이, 신분 등에 상관없이 성경은 늘 누구에게나 말을 건네는 중이다. 그러다가 어느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치고 그가 어떤 대꾸를 하기 시작하면, 이윽고 성경과 그의 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성경, 내게 말을 걸다』의 저자 배성연 박사가 그 중 한 사람이며, 그 대화의 대상은 어느 순간 독자인 ‘나’ 자신이 될 수 있고, 또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기도 하다.
『성경, 내게 말을 걸다』의 저자 배성연은 박사 학위 받기, 결혼 생활, 연구, 강의 등으로 무리한 일정을 진행함과 동시에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가정에 대한 책임에도 소홀할 수 없다고 여기던 시절,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결국 주저앉아 버렸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때 그는 하느님을 다시 찾게 되었고, 특히 지난 4년여 동안 성경 공부를 하면서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마주하고 깊이 묵상하며 그것을 기록한다. 그런 과정에서 심리학자답게 그는 성경 말씀에서 인간 심리의 내면을 밝히는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하느님의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고 사랑하게 하며 살아갈 힘을 실어 주는 영적 치유를 체험한다.
“매주 성경 말씀은 피하고 싶은 나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부족함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런 나를 보듬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해 주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가야 할지도 알려 주었다. 성경은 내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주었고, 나를 심리적 자아 통합의 길로 인도하였다.” (머리말 11-12쪽)
에릭슨의 발달 이론을 따라가며
치유의 자서전 쓰기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는 『성경, 내게 말을 걸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대표적인 발달 심리학 이론인 에릭 에릭슨의 이론을 영성과 관련지어 설명한 부분을 꼽는다. 특히 5장에서 독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인생의 단계별로 적절한 심리학적 질문을 제시해 주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글 쓰기에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며 개인적인 성찰이나 교회 내 공동체 활동을 되돌아보는 데 이 프로그램이 널리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이렇듯 『성경, 내게 말을 걸다』에서 제시한 바에 따라 글 쓰기를 하다 보면 자신의 전 생애를 돌아보는치유의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서전을 적어 나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탐색을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나’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고, 에릭슨 이론을 근거로 해서 앞으로의 삶을 준비할 수 있다면 각자의 마음에
서 심리 통합과 치유 작용이 이루어질 것이다.” (심리학과의 연결성, 28쪽)
자신이 체험한 은총을 함께 나누길 원하는 저자는 에릭 에릭슨의 발달 심리학 여덟 단계를 통해 자신이 성찰한 바를 진솔하게 나누면서 각 단계별로 성찰을 이끌어 줄 질문을 제시한다. 지나온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는 과정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기억이 잘 나지 않기도 해서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래서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데, 『성경, 내게 말을 걸다』가 마련한 여덟 개의 프로그램은 누구와 비교의 대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기 위한 글 쓰기와 성찰을 시작하는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이다. 긍지가 넘쳐나거나 부족하다는 자의식으로 위축되거나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고, 과거에 상처와 고통의 의미도 깨닫게 되어 자신만의 고유함으로 자아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듯 함께하는 이웃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쓰기를 통한 특별 치유 체험
『성경, 내게 말을 걸다』의 저자 배성연은 말씀 묵상을 글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글을 쓰는 행위 자체의 치유력을 깨닫게 된다. 글 쓰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으로 변화하는 기쁨을 느끼며 하느님의 창조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꾸준한 글 쓰기를 통해 자신의 지나온 삶을 정리하면서 심리적 자아 통합의 여정에로 발을 내딛는다.
“묵상 글을 계속 쓰다 보면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 글 쓰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했더라도, 한 장 두 장 묵상 글이 쌓여 가면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글 쓰기를 멈추지 않게 된다. 마치 운동을 하는 사람이 하루하루 목표를 성취해 가면서 체중이 변화되고 건강해져가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 열심히 운동하고 운동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두려움과 약간의 게으름을 이겨 내고 묵상 글 쓰기에 성실하게 임한다면 점차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역량이 자신 안에서 쌓여갈 것이다.” (심리학과의 연결성, 28-29쪽)
자아 통합의 여정,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한 준비 작업
『성경, 내게 말을 걸다』는 성경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심리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심리학적으로 쉽게 설명한다. 심리학의 프레임을 통해 성경을 이해하여 몇 가지 범주로 정리한다.
즉 자신에 대한 생각들, 우울, 불안 같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절박해지는 심리적인 문제들과 기억, 자유 의지, 의미 추구 등 신앙을 체화하는 데 관련된 여러 가지 인지 과정에 대한 이론들을 성경에서 찾아 정리한다. 또한 가장 이슈가 되는 타인과의 관계 부분을 자세히 다룬다. 부모, 부부, 자녀, 형제자매의 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공동체적 관계에서 투사를 버리고 진정으로 타인과 공감하는 것이 참된 신앙에 이르는 길임을 보여 준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은 물론 자아 통합에 이르는 길을 고민하고, 노년기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 나눈다.
사랑의 시작은 자아 존중
『성경, 내게 말을 걸다』는 낯선 심리학 이론과 용어를 쉽게 설명하면서 그 이론을 적용하는 예를 저자의 삶과 성찰을 통한 경험에서 찾고 보여 주기에 이 책을 읽다보면 심리학을 성찰에 활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성경, 내게 말을 걸다』에는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심리학적 관점으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부분이 매우 참신하다. 예를 들면 ‘약은 집사의 비유’(루카 16,1-8)와 같은 성경 해석이 그러하다. 약은 집사는 누가 보아도 비양심적인 인간인데, 비유에서는 칭찬을 받는다. 왜 일까? 저자는 심리학적인 통찰을 통해 자신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 자아 존중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의탁으로 커져 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잘 돌보라고 한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모두 소중한 존재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비난하거나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으며, 약은 집사처럼 자신의 자아 존중감self-esteem을 지켜 내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자신이 힘에 부치는 일을 억지로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창피한 일을 당하게 해서도 안 된다. 자기를 지켜내는 힘은 자신 안에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 드러내는 약지만 당당한 모습을 보시고 집사의 주인처럼 칭찬해 주실 것이다.” (자아존중감, 52쪽)